국가의 지도 체계에 대한 정당성에 대해 약 100년 전의 역사가이자 사회학자인 막스 베버(Max Weber, 1864~1920)는 3가지를 근거로 들 수 있다고 이야기 하였다.


첫 번째, 전통적 권위(Traditional Authority)

두 번째, 카리스마적 권위(Charismatic authority)

세 번째, 합리적-법적 권위(Rational-legal authority)



전통적 권위는 절대 왕정 시대를 이야기하며, 왕의 핏줄에 따라 세습되던 시대의 권위를 뜻한다. 이 시기에는 권력의 정당성은 역사 드라마 같은 것에도 많이 등장한다. 다른 무엇보다 '왕의 핏줄인가' '본처의 자식인가' '장남인가' 같은것들이 중요하다. 이 중에 결함된 것들이 많을수록 왕의 권위가 약해질 가능성이 높다. 아무리 흉악하고 횡포를 일삼는 왕이라도 위에서 언급한 것들이 잘 갖춰져 있을수록 왕을 교체하기는 힘들고, 아무리 흉악한 왕을 교체하려해도 일단 왕가의 후예 중의 일원을 내세워야 '명분'이라는 것이 산다.


이런 전통적 권위 시대, 세습제에 나타날 수 있는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일까?


왕이나 앞으로 왕이 될 사람이 현명하지 못거나 마음이 어질지 못할 경우가 문제가 된다. 왕은 아주 절대적이고도 막대한 권력을 가지게 되는데, 이 사람이 판단을 잘못하거나 마음이 어지럽다면 순식간에 나라가 쑥대밭이 되기 일쑤다.


이런 점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왕정 체제에서 채택한 것은 '왕과 왕의 자식을 교육하기'였다고 생각된다. 교육을 통해서 현명하고 어진 왕이 계속해서 나타나길 바란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교육을 한다고 해도 도저히 그 방법들이 자신과 맞지 않는 사람이 있는 법이다. 또 왕이었던 아버지가 현명했다고 무조건 그 아들까지 그러리란 법도 없다. 우리나라도 성종의 아들 연산군이나 영조의 아들 사도세자란 사례가 존재한다. 애초에 태어나기를 글자와 씨름하고, 다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이 안 맞는 사람이라면 오히려 그런 교육들이 답답하고 자신을 억압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또 교육하는 사람이 어떠한가도 중요한 요소가 된다. 교육하는 사람이 자신의 사리사욕 등에 가득찬 사람일 가능성도 존재한다.


전통적 권위에 기반한 체계의 정당성은 이러한 문제들을 안고도 오랜세월 동안 계속 이어져 왔지만, 결국엔 한계를 뛰어넘지 못하고 차례차례 무너지면서 21세기에 이르러서는 거의 다 사라져버렸다.



카리스마적 권위는 매우 뛰어난 지도자가 나타나 추종과 경외를 받으면서 형성된다. 이런 추종과 경외가 자연스레 복종으로 이어지면서 통치 체계의 정당성이 부여된다. 이런 카리스마를 가진 사람은 왕의 핏줄에서 나타나기도 하고, 평범한 시민 가운데에서 나타날 수도 있다.


이 권위에서는 무엇이 문제일까?


너무나 뛰어난 지도자가 언젠가는 결국 죽고 만다는 것이 문제가 된다. 그를 대신할 만한 사람을 찾기도 쉽지 않고, 권력에 대한 견제 때문에 애초에 자신을 대체할 만한 사람을 만들지 않는 경우도 많이 있다.


알렉산더 대왕은 매우 뛰어난 능력과 용기, 유연한 사고 방식등을 바탕으로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진 사람이었고, 대규모 정복전쟁을 통해 거대한 제국을 건설할 사람이었다. 그가 존재할때까지는 제국이 유지되는데 문제가 없었지만, 33세 젊은 나이에 급작스럽게 병사하자 제국은 순식간에 분열되었고 제국은 사라져버렸다. 역대급으로 넓은 제국을 완성했는데도 단 한 사람의 죽음으로 그것이 사라진 것이다.


조금 다를지 몰라도 중국의 위, 촉, 오 시대의 오나라의 손권 역시 어느 카리스마적 형태의 지도자의 문제점을 내포하지 않았을까 싶다.


결국 이런 카리스마적 권위의 가장 큰 문제점은 지도자가 죽는 순간 내부에서 권력투쟁이 발발해 스스로 무너져내릴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합리적-법적 권위는 민주주의의 근간이 되는 권위라고 볼 수 있다. 핏줄이나 강력한 지도자 한명에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법과 잘 갖춰진 관료주의적 행정 절차 체제의 정당성을 부여한다. 법과 행정절차에 따라 뽑힌 지도자는 정당한 지도자로 지배력을 행사하는 자의 권한이 합법적이라는 믿음을 주는 것이다.


이 체제에서 문제가 될 수 있는 부분은 정해진 법과 행정적 절차를 거쳐서 뽑혔다고 해서 그 지도자가 꼭 현명하거나 어질거나 사리사욕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는 점이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은 그 사람과 채 하루도 같이 지내본적이 없이 그냥 꾸며진 형태로 보여주는 모습만을 믿고서 지도자를 선택하여야 한다.


'대중은 개돼지입니다'라는 말을 한 작품을 보고 사람들은 분개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것이 또 현실처럼 여겨져 공공연히 자조하듯이 '대중은(자신도 포함) 개돼지지...'라면서 쓰이기도 하는 것을 보면, 집단의 선택이 꼭 정답이 될 수는 없음을 보여준다.


어떻게 보면 오히려 대중들은 달콤한 감언이설이나 선동에 휩쓸리기도 쉽기에 잘못된 지도자를 선택할 확률이 더 높을지도 모른다. 길게 보면 내 몸을 오래도록 건강하게 해줄 것들은 보통 쓴맛이 나기 마련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도, 그런것 보다는 당장의 눈앞에 단맛에 사람들은 빠지기 쉽다. 많은 사람들이 '단맛'을 이야기 하는데 그 안에서 혼자 '쓴맛'을 외치기엔 한순간에 그 많은 대중들에게 '적'이 될꺼 같아 같이 단맛을 외치게 되는 것이다.


유사한 사례로 심리학에 보면 매우 도덕적인 사람이라도 특정한 집단내에 속하게 되면 도덕성을 발휘하기 힘든 상황이 나타나기도 한다고 하는데, 그들에게 휩쓸려 그 동안 옳다고 생각한 가치관을 내던지는 것이다. 이는 지도자를 뽑을 때도 얼마든지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된다.


실제로 20세기 최악의 전쟁과 살육을 행한 인물로 꼽히는 사람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히틀러도 투표로 뽑힌 인물이라는 것이 이를 반증한다고 할 수 있다.


소크라테스의 제자 플라톤은 대중의 집단광기가 만들어내는 비뚤어진 생각과 잘못된 행태에서 민주주의가 가진 한계를 직접 눈과 몸으로 보고 느끼며 강력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이런 까닭으로 현대 합리적-법적 권위는 이런 한계와 부작용을 막기 위해 '권력의 분산'을 선택한 것이 아닐까 싶다. '삼권 분립'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합리적-법적 권위는 어떻게 보면 지도자를 잘 뽑는것 보다도 권력을 최대한 분산시키고, 분산된 권력이 다시 합쳐지지 않도록 잘 감시하는 것이 더 중요한것이 아닐까 싶다. 현대사회에서 합리적-법적 권위를 통한 민주주의가 대부분의 세계에서 대세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시점에서, 미국이 여러방면에서 가장 앞선 모습을 보이는건 어찌보면 이런 권력의 분산이 가장 잘 되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

Posted by 은목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