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에는 아직 유로화라는 통화 단위(1999년 출범)가 생겨나지는 않았고, 유럽환율조정체제(European Exchange Rate Mechanism, ERM)이라는 기구를 통해 유럽국가내의 환율시장의 안정을 꾀하는 중이었다. 합의한 중심환율(독일 마르크)에 대해서 자국의 통화환율이 2.5% 혹은 6% 변동폭을 가지며 따라가도록 제도가 도입된 상태였는데, 환율이 급변동할 때 각국 중앙은행의 개입으로 환율이 안정적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 큰 장점이었다. 고정환율제도는 아니지만 이와 유사한 준고정환율제도였던 것이다.

 

그러나 결정적인 단점이 존재하는데 바로 협약을 지키기 위해 중앙은행의 능력범위를 넘어서는 경우가 생기는 사태가 발생할수도 있다는 것. 자국 통화가 계속 약세를 보이게 되면 가지고 있는 외환보유고를 이용해 자국통화를 매수하여야 하는데, 약세가 순간적인 변동이나 단기적인 것이 아니라 장기간에 걸쳐 계속해서 약세가 발생한다면 가지고 있던 외환보유고가 고갈될 수 있는 것이다.

 

1990년 10월 3일 서독과 동독으로 나뉘었던 독일이 통일되면서 이 문제가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는데, 진작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를 받아들여 빠르게 발전한 서독에 비해 사회주의 계획경제체제였던 동독은 발전이 많이 늦은 상태라 이곳에 대한 막대한 발전비용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동독에 대한 재정지출이 급격하게 늘어나면서 정부를 통해 시중에 막대한 투자자금이 쏟아져 나왔다. 당연히 시중에 물자보다 돈이 압도적으로 많아지기 시작하면서 하이퍼 인플레이션 사태가 발생할 것은 불보듯 뻔했고, 독일은 돈은 풀면서 인플레이션은 잡기 위해 초고금리 정책이라는 양동작전을 개시했다.

 

그리고 유럽국가들의 돈이 대규모로 독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낮은 금리의 자국 돈을 빌려서 그 돈으로 높은금리를 주는 독일로 이동한 것이다. 높은 금리를 통해 낮은 금리에서 발생하는 이자비용을 다 상쇄시키고도 돈을 벌 수 있는데다, 독일은 당시 ERM의 중심환율로 지정될 정도로 강력한 힘을 가진 국가였기에 마르크는 대외 신용도가 매우 높은 상황이었다. 높은 금리도 받을 수 있고, 국가파산 같은 사태에 대해 걱정도 없는데다, 이후 이 국가가 계속해서 잘 나간다면 그 나라의 통화단위도 잘 나가는 강세현상이 발생할 것이니 망설이지 않고 어마어마한 자금이 이동했다.

 

준고정환율제도인 타국 중앙은행들은 어마어마한 자국 통화 매도(마르크화 매수를 위해)를 막기 위해 당연히 외환보유고를 이용해 자국 통화를 매수하거나, 혹은 금리차를 이용하려는 움직임을 제거하기 위해 자신들도 독일에 맞춰 비슷하거나 더 높은 금리정책을 취해야 했는데, 낙후된 동독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높은 경제성장률로 초고금리를 상쇄할 수 있었던 독일에 비해서 경제성장률도 낮은데다 대외 신용도가 기초경제체력도 약했다.

 

독일과 비슷하게 금리를 상승시킨 국가들은 경기가 급속도로 얼어붙으면서 투자가 대폭 줄어들면서 고용이 줄어 실업률이 치솟았고, 결국 ERM을 탈퇴하면서 준고정환율제도에서 벗어나 자국통화의 약세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영국은 그렇지 않았다. 독일과 유럽의 맹주가 누가 될 것인가를 겨룰 생각이었던 영국은 이 정도쯤은 얼마든지 버틸 수 있고 우리는 외환보유고가 넉넉해 자국통화를 매수하는 방법으로 얼마든지 버틸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영국의 존 메이저 총리는 "영국 파운드화의 가치를 절하하는 건 미래에 대한 배신"이라며 자신감을 표출했다.

 

전체 시장의 방향을 한 국가가 혼자서 버텨낼 수 있다는 이 생각을 조지 소로스는 재빨리 잡아냈다. 그리고 파운드화에 대한 대규모 매도 공세를 시작하고 파운드화는 무조건 폭락할 것이라며 언론에 흘리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작은 불길이 생겨나면서 불안한 판국에 소로스가 기름을 끼얹은 것이다.

 

결과는 알다시피 소로스의 승리로 끝난다. 영국 은행은 투기자본의 자금쯤이야 싶었으나 시장전체의 방향이 정해진 상태에서 투기자본의 공세까지 가세하자 금방 항복을 선언했다.

 

이후 유로화가 탄생했으나 영국은 유럽연합에는 가입했어도 유로화 사용은 반대해 파운드화를 사용했는데, 어쩌면 이때의 경험을 통해 자국통화를 타국과 일치시킨다는 것에 대한 부작용을 두려워한 것이 아닐까.

Posted by 은목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