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의 변동이 심할 경우 경제활동이 위축된다. 특히 수입과 수출을 많이 하는 우리나라와 같은 경우 환율변동이 심해지면 그것때문에 타국과의 거래를 포기하는 상황이 나타날 수도 있다. 헷지 등을 실행한다고 해도 거기에 비용이 들어가며 그것 역시 지속적으로 신경써서 관리를 해줘야 하는데 쉽지 않다. 그리고 환율이 급등하면 물가도 따라서 급등했다가 환율이 급락하면 따라서 급락하는 등 경제상황에 큰 혼돈을 줄 수도 있다. 그렇다면 환율이 고정되어 있다면 어떨까?

 

환율을 고정시켜 고정환율 제도를 유지하는 방법은 정부가 외환시장에 개입해 수요와 공급을 조절하는 것이다. 만약 달러/원을 일정하게 고정시키려면 원화의 수요가 증가할 때는 원화로 달러를 사들이면 자연스럽게 시중에 원화의 공급이 증가하고 달러의 수요가 증가해 균형이 이뤄진다. 반대로 달러의 수요가 증가할 때는 보유한 달러로 원화를 사들이면 된다.

 

이렇게 환율이 안정되면 물가와 경제활동이 안정화되면서 무역이 활발하게 이뤄질 수 있으며 금융거래도 활성화되면서 안정적으로 국가경제가 성장해나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특히 개방 초기 국가들의 경우 이를 통해 빠른 무역활성화를 이륙하면서 수출주도의 성장을 이뤄나갈 수 있다. 개발도상국의 경우 일반적으로 국가 신용에 대한 의심으로 통화가 많이 평가절하되어 있는데다가 물가와 임금이 낮아 물건을 제조해 타국에 팔아 이익을 남기기 쉬우므로 환율을 안정화 시켜두면 높은 이익을 낼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이런 장점들에게 불구하고 대부분의 국가는 발전도가 높아지고 개방정도가 커질수록 점차 변동환율제도를 채택하게 되는데 이는 고정환율제도에 위험한 단점들이 함께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첫 번째로, 자신들의 통화가 거래되는 규모가 커지면 커질수록 이를 유지하기 위해서 더 많은 거래등을 하여야 하고 이것이 곧 환율유지에 비용증가로 이어진다.

 

두 번째는 외부충격에 너무나 취약한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만약 미국에서 특정한 이유(미국내 경기침체나 경쟁국 제품의 가격경쟁력 강화 등)로 한국 제품에 대한 수요가 감소해 달러공급이 감소하게 될 경우, 환율을 일정하게 유지하려면 시중에 달러를 팔아서 달러 공급을 증가시켜주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시중에 있는 원화가 줄어들게 된다. 통화인 원화는 자꾸 시중에서 사라지는데 물건의 공급은 그대로 되므로 돈이 귀해지고 물건이 흔해지면서 소비와 투자가 침체될 수 있다. 이것이 심해지면 디플레이션이 빠지면서 무시무시한 장기경제침체로 이어질 수 있다.

 

세 번째는 중앙은행의 역할이 대폭 축소된다는 것이다. 중앙은행의 역할이 축소된다는 것은 물가변동이나 경기과열이나 침체에 대한 대응이 느려지게 된다는 것을 뜻한다. 몇년 전 쯤에 나라를 뒤덮으면서 경기침체를 일으켰던 메르스라든가, 특정한 금융상품의 부실이 발견되어 신용경색 등이 심화되면서 경기가 위축되고 물가가 하락하면 중앙은행에서 금리를 내려서 경기부양에 나설 수 있다. 그러나 고정환율제도에서는 이런 경기부양이 거의 불가능해진다.

 

잠깐의 부양은 가능할 수도 있고, 아주 약간의 금리인하까지는 가능할 수도 있지만, 만약 다른 선진국과 비슷한 금리수준이거나 그들보다 금리가 낮아진다면 투자자들은 원화를 차입해 선진국 통화를 무제한으로 사들이는 캐리트레이드를 시행할 것이다. 환율이 고정되어 있으므로 환차손에 대한 염려를 할 필요 없이 더 안전한 통화로 더 많은 금리를 받는 방법을 시행할 것은 자명하다. 만약 그 대상이 달러라면 달러에 대한 초과수요가 계속 발생하게 될텐데, 고정환율 제도를 유지하려면 시중에 달러를 계속해서 팔고 원화를 사들여야 한다. 위에서도 말했듯이 이렇게 되면 시중에 원화가 줄어들면서 국내에는 돈이 귀해지고 물건이 흔해지는 사태가 발생하고 소비와 투자가 침체된다. 즉 단기금리를 인하하면서 시중에 자금을 풀어 경기를 부양하려고 했지만, 고정환율 제도 유지를 위한 과정에서 풀린 원화가 상쇄되어 부양효과가 제거되는 것이다. 거기다 고정환율제도를 유지하기 위한 이 과정이 장기화되면 달러를 지속적으로 내다팔면서 외환보유고가 급감하게 되고, 이는 외환위기로 이어지는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다. 즉, 통화정책의 독립적 활동이 불가능한 상태가 됨으로써 자국내 경제문제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통화정책이 아니라 정부지출을 늘리는 재정정책을 사용해 경기를 부양하는 방법이 물론 존재한다. 그러나 통화정책은 한국은행 산하의 경제분야 전문가인 위원 7명이 모여서 의견의 일치를 보면 되지만, 재정정책은 수많은 국회의원들의 의견일치가 필요하다. 쉽게 말해 재정정책은 국회의원들이 서로 욕하고 멱살잡고 싸우던 과정을 생각하면 된다. 서로 의견이 분분해 누가 맞네, 누가 틀렸네 하면서 권력싸움하기 바쁜와중에 쉽게 재정정책이 결정될 수 있겠는가?

 

위와 같은 까닭으로 정책이 집행되는데 있어 통화정책은 빠르게 실행이 가능하지만 재정정책은 시간이 너무나 많이 필요하다. 따라서 통화정책의 독립적 활동이 불가능하다면 자국 경제문제에 유연한 대처가 거의 불가능해지는 것이다.

Posted by 은목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