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일상생활 속에서 정해진 것을 고르고 익히는 것에 익숙하다.

 

식당에 들어가서 음식을 주문한다고 가정하자. 어떻게 주문을 할 것인가? 주문하는 곳이나 식다에서 음식을 만들고 있는 분에게 '이런 이런 음식을 만들어 주실 수 있나요?'라고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대부분 그 식당의 메뉴판을 보고 이미 정해져 있는 그 음식들을 주문하게 된다. 그 외의 주문에 대해서는 설사 가능한 것일지라도 손님에게나 주방장에게나 더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만 가능하다. 그 과정에서 시간의 소모, 들어가는 재료변경과 조리과정의 특별함 등으로 가격협상을 다시해야 할 수도 있다. 즉, 정해진 메뉴를 변경하는데는 더 많은 비용이 요구되는 것이다. 이를 '메뉴 효과'라고 한다.

 

메뉴 효과는 QWERTY(쿼티) 형식으로 된 영문 키보드가 가장 대표적인 사례다. 폴 크루그먼의 '경제학의 향연'에서 다루고 있는 이 사례는 간단히 말하면 다음과 같다. 영어 알파벳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것은 T, S, E 등이다. 그런데 쿼티 형식에서는 가장 많이 쓰이는 알파벳들이 한쪽으로 치우쳐져 있기에 사실상 매우 비효율적인 구조를 갖추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비효율적인 구조, 즉 이미 정해진 '메뉴'에 따라 사람들이 이미 익숙해져 버린 상태이기에 이를 변경하려면 많은 비용이 들어갈 수 밖에 없다. 결국 계속해서 쿼티 형식의 키보드가 세상을 지배하는 것이다.

 

한글 자판도 비슷한 경우라고 할 수도 있다. 한글의 경우 한 글자에 자음+모음, 혹은 자음+모음+자음의 형태를 띠고 있다. 즉, 자음을 사용할 일이 더 많다. 그리고 오른손잡이인 사람들이 더 많다. 그렇다면 자음이 오른쪽에 있어야 더 많은 사람들이 효율적으로 배우고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이것 역시 이미 메뉴효과에 의해 대한민국 사람들에게 익숙해진 상태라 바꾸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즉 메뉴효과란, 아주 오래되어 이미 익숙해진 것 또는 그것을 바꾸려면 많은 비용(시간이든 돈이든)이 들어가는 것에 대해서는 사실상 다른 선택지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주 심각한 결함이 있다면 모르겠지만, 그런것이 아니라면 변경하는데 들어가는 비용이 훨씬 크기 때문이다. 바꿀 수 있을지 몰라도 사실상 '선택의 자유'가 없는 것이다.

 

국제적으로 판매망을 갖추고 자사의 제품 및 상품을 판매하는 기업에게서도 비슷한 현상을 찾아볼 수 있다. 자국내에서만 물건을 판다면 모르지만, 타국에 물건을 팔 경우 환율을 고려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환율이 조금 변동한다고 해서 가격을 시시각각 계속 바꾸면 어떻게 될까? 그때마다 특정국가내 매장의 모든 가격표를 바꿔 달고, 홍보 전단 등도 새롭게 다시 다 제작하고, 그 변경된 가격을 고려해 앞으로의 경영정책을 새롭게 계속 짤 것인가? 이는 음식점 메뉴에 없는 음식을 주문하는 것이나, 키보드 자판을 바꾸는 것보다는 못해도 높은 비용이 수반될 것임이 자명하다.

 

이런 까닭에 국제적으로 활동하는 기업의 경우, 특정국가의 환율 변동성 속에서 적정한 가격을 지정한 뒤, 웬만한 환율 변동으로는 가격은 변경시키지 않고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다. 설사 환율의 급격한 변동이 있었더라도 어느 정도 시간을 두고 가격을 조정하지 다음 날 바로 변경하는 사태는 발생하지 않는다.

Posted by 은목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