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1월 8일 오후 8시 30분.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내일 0시부터 500루피화와 1000루피화의 사용을 금지하겠다는 발표가 흘러나왔다. 이 둘 화폐는 통용되는 화폐의 80%가 넘는수준. 아무런 예고도 없이 갑자기 발표되었기에 혼란이 올 것은 분명했다. 은행에 가서 신권 500루피와 2000루피로 교환하라고 했지만, 은행조차 신권을 제대로 준비할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인도는 은행에 돈을 맡기기보다는 집에 그냥 돈을 보관하는 것이 더 안전하다는 관념이 있어서 은행계좌조차 없는 사람이 많았다. 아직 주민등록증 발급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태라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지만... 그보다는 아직 금융권에 대한 불신이 많다라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아직 신용카드 같은 체계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현금이 없으면 생활자체가 거의 불가능한 인도의 경제활동이 침체될 것은 자명했고 실제로 소비를 중심으로 경제가 위축되는 모습을 보여왔다. 신권 교환에 따른 불편함에 따른 불평불만 및 경기침체가 생길것이 분명한 이런 결정을 왜 하게 됐을까?
화폐개혁을 단행하게 된 대표적인 목적은 '검은 돈 차단'이다. 부패 등으로 불법 경제행위가 만연하다는 현재 인도 지하 경제 규모는 국내 총생산의 무려 30%~70% 규모(통계의 범위가 말도 안되게 큰 것을 보면 알겠지만, 신뢰성은 많이 떨어진다)라고 하니, 그 지하 경제 돈을 양지로 끌어내려고 하는 것이다. 검은 돈을 양지로 끌어내고 이를 통해 세수입을 늘리겠다(12억 인구 중 소득세를 납부하는 사람이 3%도 안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다라고 할 수는 없다.
현재 정부는 제조업과 인프라 개발을 위해 힘쓰고 있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당연히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다. 개개인의 돈이 한 곳으로 모으려면 은행에 사람들이 돈을 맡겨야 하는데, 총리가 직접 1인 1통장 정책 등을 장려하고 있지만 애초에 은행에 사람들이 찾아오는것조차 하지 않으니 반강제적으로 은행에 들리도록 한 것이다. 이것이 저축률로 연결되면 부패를 줄이고 지하경제를 양지화 시킴과 동시에 높은 저축률을 통해 빠른 경제발전을 이뤄낼 수 있다.
이렇게만 보면 좋은 것만 보일 수 있지만, 사실 여기에는 정치적인 성향도 가미되어 있기에 애매해진다. 부패가 심한 이 나라에서 나렌드라 모디 총리가 무엇을 외쳐 당선되었을까? 당연히 부정부패 척결이다. 다른 것도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이것이다. 그런데 자신의 주변 측근들에게서 연이어 비리가 터져나오면서 위기에 몰리게 된 것이다. 이 상황에서 자신의 이미지를 다시 깨끗한 이미지로 새롭게 만들어냄과 동시에 이전에 정권을 경쟁당을 견제하는 수단으로 화폐개혁을 단행을 선택했다고 할 수 있다. 부패가 심했던 인도에서 정권을 잡았던 경쟁당(국민회의당)에서 당연히 부정한 수단으로 많은 정치자금을 모아놨을 것인데, 이미지 개선과 함께 이 정치자금을 붕괴시켜 다음 선거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려는 것이다. 즉, 화폐개혁은 자신의 정치생명을 위한 목적도 존재한다.
사실 화폐개혁은 경제적 보다는 정치적 목적이 작용하는 경우가 더 많다. 화폐개혁이 진행되는 곳들만 지켜봐도 대부분 아직 사회가 혼란스러운 후진국 및 개발도상국, 그 중에서도 군사정권 및 독재정권인 경우가 많다.
1962년 한국도 군사정권 하에 '환'을 '원'으로 바꾸는 화폐개혁을 단행했다. 10환을 1원으로 바꾸게 되었는데 목적은 물가상승률을 억제시키고 숨어있는 지하의 검은 돈을 끌어내어 경제발전 자금으로 사용하기 위해서였다. 어마어마한 지하자금이 강제로 양지화 되면서 은행예금등으로 들어올 것이라 보았지만, 실제로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적은 양밖에 숨어있지 않았다는 결론이 났을 뿐이다. 결론적으로 인도와 비슷하게 혼란한 상황이 발생했고, 경기침체만 남았던, 성공적이었다고 말하긴 어려운 개혁이었다.
인도 역시 이와 비슷한 상황이 아닐까 싶다. 화폐개혁은 부패한 심각한 사회에서 이를 척결하기 위한 강력한 카드 중 하나라는 것은 분명하나, 이것이 진정으로 제대로 된 효과를 내기 위해선 화폐개혁을 실시하는 이유가 분명히 국가경제발전에 전적으로 초점이 맞춰져야 함과 동시에 이를 위해서 치밀한 준비를 갖추고 실행하여야 부정적 영향(혼란과 경기침체)을 이겨내고 긍정적인 상황을 더 많이 만들어낼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도의 화폐개혁은 이미 출발부터 심각하게 삐걱거렸다. 은행에조차 아무런 귀띔을 해주지 않아 신권이 전혀 준비되지 않은것만 봐도 국가경제나 부패척결을 위해서라기보다는 그냥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급하게 결정했을 확률이 높아 보인다. 이에 세 가지 불안한 요소가 눈에 띈다.
첫째, 지하 경제 규모가 GDP의 30%~70%라는 막대하지만 엉성한 통계수치에서부터 검은 돈을 양지로 끌어냈을 때 그 결과에 실망할 가능성이 더 클 확률이 높다. 아무리 지하경제가 크다고 해도 최대 70%를 예상한다는 것은 과장이 많이 섞여있다고 보인다.
둘째, 은행에 간 사람들이 돈의 교환조차 제대로 못하게 되는 경험을 몇달간에 거치면서 과연 은행과 같은 곳에 긍정적인 생각을 품을 수 있을까? 오히려 '맡긴 돈을 지급조차 제대로 못해줄 곳이구만...'이라는 생각을 품을 가능성이 더 높지 않을까?
셋째, 경기란 한 번 침체로 돌아서면 이것을 다시 돌리기가 쉽지 않다. 전반적인 경제활동 침체 → 소비와 투자위축 → 자영업자 및 기업들의 수익 급락 → 투자 더 위축, 고용 감소 → 실업률 증가와 소비는 더 위축.
첫째 상황은 시간이 더 지나봐야 결과가 나타나겠지만, 둘째나 셋째는 시간이 더 흘러가지 않아도 시작때부터 이미 예견할 수 있는 것이었다.
결론적으로 인도의 화폐개혁 목적인 부패척결을 통한 자금확보와 이를 이용한 경제발전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 인도에서는 '몇 달간 아주 불편했지만, 필요한 조치였다'라는 의견이 대세가 되고 있는 상황이다. 즉, 경제적으로는 현재와 미래 모두 부정적인 면이 더 강하다고 보이나 정치적으로는 이미 아주 성공한 개혁이었다고 개인적 평가를 내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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