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이런 걸 알고 있다는 전제자체가 성립할 수가 없지만, 우리는 이런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오늘이 네 삶, 네 인생의 마지막인 것처럼 해봐라' 라는 이야기들 말이다. 그런 생각으로 하면 무엇을 하든지 현재의 생활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무엇을 하든지 더 열심히 할 것이라는 뜻을 담은 것이 대부분이지만 실제로 마지막날이라면 어떻게 행동할까?

 

어떤 사람들은 그 동안 마음속에 담아두고 잘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가족이나 친구에게 하거나, 그동안 좋아하던 사람에게 고백을 하면서 작별을 고하겠다고 할 것이다. 만약 마음 속에 그 동안 분노 같은게 가득했던 사람이라면 그 분노를 풀기 위해 범죄 같은걸 저지를지도 모르겠다.

 

모아둔 돈을 마구쓰면서 마지막날을 보낼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 동안 해보지 못했던 사치나 방탕한 생활을 해보겠다는 것이다.

 

무슨 선택이든 결론적으로 '그 동안 하지 못했던 것을 해보겠다'인 것이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나는 인생의 마지막날에도 그냥 조용히 평소와 별로 다를 것 없이 지내는 선택을 할 것 같다.

 

사치와 방탕한 생활? 사실 이런 것도 그 다음날이 있으니까 그런 행위를 하면서 희열을 느끼거나 하는것이 아닐까? '내일 또 하루 사람들 틈에서 치여서 성실히 일해야만 하겠지'라는 생각이 있으니까 그 순간에 하는 불성실할 수 있는 행위들에 더 큰 의미가 부여되는 것이고, 만약 다음날이 없다면 그런 행위들에 큰 의미부여가 되지 않을 것 같다.

 

갑작스럽게 하지 못했던 말을 여기저기 하고 다니는 것도... 그냥 너무 '나 마지막이에요'라는 슬픔을 여기저기 뿌리고 다니는 것 같아서 그닥 끌리지 않는다. 오히려 갑작스럽게 그렇게 행동하고 내뱉는 말에 주변사람들이 당황할 수도 있지 않을까? 특히 그 동안 고백도 못하고 있던 사람에게 죽음을 앞두고 고백한다는 것은... 약간 비겁한 느낌도 들어서 절대 하지 않을 것 같다. '나 오늘이 마지막이니까 날 좋아해줘'라는 느낌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상대가 날 좋아하지도 않지만 불쌍한 감정에 그 마음을 받아줄 수도 있을텐데... 영 별로다.

 

마음에 담아둔 분노는 그걸 풀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다가 오히려 아무것도 못할 수도 있겠다 싶은데다가, 그런 분노를 만약 범죄로 같은걸로 풀어봤자 뭐가 남겠는가. 아니, 풀려고해도 풀리지도 않을 것 같다. '범죄자는 그 장소에 돌아온다'라는 말은 어쩌면 그 행위가 어떻게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되고 전파되는지를 볼려는 행위인데, 곧 죽을텐데 그런 걸 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그런 행위로 결국 무엇이 남을까? 속 시원한 감정? 글쎄...

 

말은 이렇게 했지만 저 위의 행위들이 정답일 수도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나는 그냥 평소와 비슷하게 보낼 것 같다. 유일하게 다른 점이라면 유서 한장 쓰는 정도? 그 동안 하지 못했던 말 같은게 있다면 그 안에 조금 같이 써넣을지도 모르겠다.

 

괜히 못했던 말이나 행동을 한다거나 돈을 마구 쓰려는 행위 등 평소에 전혀 하지 않던 것을 해보려고 마지막을 정신없이 보내곤 싶지 않다. 그냥 소소하게 평소대로 일상을 보내다 여유롭고 편안하게 눈을 부치는 게 더 눈을 감을 때 편안한 마음이지 않을까.

 

오스만투르크의 전성기를 이끈 술탄 술레이만 1세는 이런 말을 남겼다. '내가 죽고 나를 묻으러 갈 때 내 한 손을 관 밖으로 내놓아라' 왜 이런 이야기를 했을까? 술레이만 1세는 이런 이야기를 덧붙였다. '전 세계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세상을 지배하며,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던 사람도 갈 때는 빈 손으로 간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알려라' 라는 이유였다.

 

'퇴계 이황'은 앉아서 눈을 감았는데, 마지막 유언으로 '저 앞에 보이는 매화꽃에 물을 주거라'라는 말을했다고 한다. 별 다른 뜻은 없다. 이황은 마지막 날도 평소에 본인이 하던 일상을 그대로 보냈는데, 눈을 감을 때가 되자 '아, 저기에 물 주는 걸 잊어구나'라는 생각이 나서 그런 말을 한 것이다. 본인이 보내던 일상을 다른 사람들은 별 가치가 없는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황은 항상 그런 작은 것들에도 스스로 가치를 부여하며 소소한 일상 아낀 것이다.

 

원효 대사도 해골물을 먹고 깨달음을 얻어 무엇이든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했다. 사람간에도 마음이 통하면 별 볼일 없는 행위라도 서로간에는 너무나 즐거울 수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간에는 아무리 호화로운 생활이라도 불편하고 거북한 마음이 들 수 있는데, 결국 무엇이든 자신의 마음으로 스스로 가치를 부여하는 일이 소중한 것이다.

 

돈을 이리저리 쓰고 방탕한 생활을 하든, 평소에 하지 못했던 것을 해보든, 결국 중요한 것은 자신이 그곳에 어떤 가치를 부여하느냐가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닐까? 자신이 스스로 높은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라면, 그것이 어떤 선택이든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Posted by 은목걸이